예문에듀/단행본
토정 이지함은
진귀한 새, 괴이한 돌, 이상한 풀이다
《토정비결》 저술자이자 조선 최고의 예언가! 토정 이지함은 누구인가?
기인이자 뛰어난 행정가였던 토정 이지함의 업적을 후손의 시선으로 쫓다
정초가 되면 누구나 한번쯤 일 년의 신수를 점치기 위해 보는 토정비결. 이 책은 《토정비결》의 저술자이자 조선 최고의 예언가 토정 이지함의 생애와 백성을 향한 애민사상을 도술가 전우치를 등장시켜 유쾌하게 그린 장편소설이다. KBS 사극 『맥』 『태양인 이제마』 『객주』 『먼동』 등을 집필한 극작가 김항명이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던 이지함의 행적과 《토정비결》이 세상에 나오게 된 이유를 들려준다.
조선 중기 학자였던 이지함은 어려서는 형 지번에게 학문을 배우고, 나중에 서경덕의 제자가 되는데, 저자는 이 일화에 전우치와 황진이를 등장시켜 이야기의 재미를 더했다. 또 학문적 교류와 친분이 두터웠던 율곡 이이와의 이야기도 들려주면서, 율곡이 《연경일기》에서 이지함에 대해 쓴 인물평도 소개한다.
아산 현감 이지함은 어려서부터 욕심이 적어서 외계의 사물에 인색하지 않았다. 기질을 이상하게 타고나서 능히 춥고 더운 것은 물론이고 배고픈 것도 견딜 수 있었다. 겨울에 벌거숭이로 매서운 바람 속에서도 앉아 견딜 수 있었으며, 열흘 동안 곡기를 끊고서도 병이 나지 않았다. 천성이 효성스럽고 우애가 두터워서 형제간에 있거나 없거나 자기 소유를 따지지 않았다. 재물을 가볍게 여겨서 남에게 주기를 잘했다. 세상의 화려함이나 음악, 여색에 담담하여 아랑곳하지 않았다. 성질이 배 타기를 좋아하여 바다에 떠서 위태로운 파도를 만나도 놀라지 않았다. - 본문 중에서
이지함은 사화기의 정국에서 과거를 포기하고, 전국을 유랑하며 많은 기행과 관련된 일화를 남겼는데, 이 책은 그런 그의 행적을 후손인 이필재의 눈으로 좇고 있다. 이야기는 이필재가 비전을 찾기 위해 이지함의 행적으로 쫓으면서, 이필재와 이지함의 이야기를 번갈아가면 들려준다. 이필재는 한산 이씨 종손으로 종고조부가 이산보이고, 이산보의 숙부가 이지함이다.
어느 날 이필재에게 동문수학하던 배창진이 찾아온다. 당시 조선은 장희빈이 왕자를 낳자 중종은 세자책봉을 두고 신하들과 대립하고, 서인들은 세력 몰락을 막기 위해 성리학자이자 주자학의 대가인 우암 송시열이 일러준 비전의 흔적을 찾기 위해 이지함의 후손인 필재를 찾은 것이다. 조선과 서인의 미래를 위해 반드시 비전을 찾아야 하는 필재가 선조 할아버지 이지함의 흔적을 찾던 중 우암 송시열이 발문을 쓴 《토정집》을 발견한다. 우암을 찾아가지만, 그는 중종의 노여움을 사 결국 귀향길에 오른 후 사약을 받다. 이지함의 이야기는 비전을 찾기 위해 《토정집》을 띄엄띄엄 읽는 필재의 시선으로 들려주면서, 그의 업적과 비범함을 쫓아간다.
필재는 과연 《토정집》에서 비전을 찾고 서인의 몰락을 막을 수 있을까. 저자는 후손이 선조가 걸어온 길을 되짚는 형식으로, 토정 이지함이 단순히 점술가가 아닌 백성을 사랑한 인물로서 그의 삶을 좀 더 입체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 본문 중에서 >
“비전은 진정 있는 거요?”
“예에?”
대답하는 최규서보다 배창진이 더 놀란다.
“있는지는 명확지 않으나, 그 예언대로 이 땅에 피바람이 몰아칠 운명은 어찌할 수 없을 것 같소.”
진짜 오늘의 상황을 예언한 비전이 있는 걸까? 배창진은 처음 자신을 보령 한산 이씨 종가로 내려가라던 우암 송시열이 한 말이 떠올랐다.
“토정 선생의 종가니라. 넌 토정이 누구인지 잘 모를 테지만, 흔적은 있을 게다. 그 흔적이 금상의 잘못된 생각을 바로잡을 유일한 끈이 될 수도 있을 터.”
우암은 그 말을 한 이후, 짧은 기침 소리도 내지 않았다. 배창진이 하직 인사를 올릴 때도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아니, 그 눈은 무겁게 감겨 있었다.
- 55p, ‘비전을 찾아라’ 중에서
“어디로 가는 걸음인가?”
“그게 왜 그리 궁금하시오?”
한참을 멀뚱멀뚱 바라보기만 하던 우치의 조심스러운 물음에 지함의 퉁명스러운 대답이다.
“기왕이면 심심찮게 말동무나 할까 했지. 싫은가?”
“싫고 좋고 간에 따라붙을 거잖소?”
“남의 속을 어떻게 그렇게 꼭 짚어 아는 척하는 거야? 아닐 수도 있지.”
“흥! 엊그제 호패 얻어 찬 아이에게 어른이 이리 치근거리는 걸 보면, 싫다고 해도 동행할 작정을 이미 한 거 아니오?”
“우리 화해하는 게 어떤가? 난 전우치라고 하네.”
상대가 느닷없이 통성명을 청하자 지함은 머쓱해진 기분이다.
- 87p, ‘길을 떠나다’ 중에서
“니 맘속에 장도(粧刀)를 가지고 있느냐?”
화담은 지함의 물음에 가타부타 대답은 않고 또다시 불쑥 엉뚱한 소릴 꺼냈다.
장도? 주머니나 소매 속에 넣고 다니는, 칼집이 있는 작은 칼을 이르는 말 같긴 하지만, 지함이 딱히 그렇다고 단정 짓지 못하는 건 화담이 불쑥 꺼낸 말의 진의가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이다. 지함은 잠시 머뭇거렸다.
더 기다리지 않고 화담이 말을 이었다.
“물욕이 생기면 그 물욕을 자를 수 있는 장도. 권력욕이 생기면 그 권력욕을 자를 수 있는 장도. 음욕이 생기면 그 육욕을 자를 수 있는 장도.”
- 150~151p, ‘고향으로 가다’ 중에서
“허, 왜 이러고 있누?”
전우치의 목소리다. 전우치가 또 나타났다.
지함은 미처 상황 판단을 못 하고 우치를 멀거니 쳐다본다.
“아무리 글 읽기 좋아하는 서생이라지만 지금이 어떤 땐데 이러고 있어? 사람 참, 그렇게 눈치가 없어?”
“무슨 소리우?”
“아, 황진이가 왜 한사코 자넬 붙잡았겠나? 자네도 이젠 인간 세상의 쾌락을 경험해 볼 나이가 됐잖은가. 안 그래?”
“무슨 가당찮은 소리요? 내가 뭘 어쩐다구요?”
지함은 화가 난 목소리다.
“흐흐, 무릉도원이지, 암. 망설이지 말고 별당으로 가 보아. 진이가 비단금침 펼쳐 놓고 자넬 기다린다니까.”
지함은 윗목에 놓아둔 오그랑망태를 집어 우치를 향해 힘껏 패대기친다.
“아쿠!”
우치가 두 손으로 이마를 감싸며 쿵덕 엉덩방아를 찧는다.
“돌팔이 도사 주제에 사람을 뭘로 보고 희롱질이야. 이제 보니 용소에서 생긴 일도 그쪽 소행이군! 당장 썩 꺼지지 못해.”
-141~142p, ‘화담을 만나다’ 중에서
“숙부님!”
산해의 소리에 지함이 천천히 얼굴을 돌린다.
“조정 중신이 입궐은 않고 여긴 어쩐 일이더냐?”
산해는 순간 실소를 터트릴 뻔했다. 너무나 여유로운 숙부의 표정 때문이다.
“무겁지 않으십니까?” 큰절을 올리고 산해가 한 말이다.
“갓보다야 무겁지. 하나 견딜 만해.”
“그럼 새로 하나 장만하시지요. 솥은 밥 짓는 데 쓰는 도구 아닙니까?”
“무슨 소리야? 젖혀 놓고 밥을 지으면 솥이 되고, 밥을 다 지은 후에 깨끗이 씻어서 뒤집어 놓으면 갓이 되는 것이지. 하나를 가지고 두루치기로 쓸 수 있으니 얼마나 실용적이냐.”
- 307p, ‘무쇠솥을 갓 대신 쓰다’ 중에서
[필재 이야기]
비전을 찾아라
이지함은 누구인가
우암을 찾아가다
우암을 떠나보내다
토정의 행적을 쫓다
기찰포교에게 쫓기다
마포 나루에 오르다
비전을 찾다
[토정 이야기]
길을 떠나다
화담을 만나다
고향으로 가다
흙집을 지어 살다
신관 사또로 부임하다
무쇠솥을 갓 대신 쓰다
걸인들을 구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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